이정재 감독 데뷔작 《헌트》를 보고 나면 마음

한켠이 묵묵함을 느낀다. 첩보 영화 특유의

긴장감 속에서 스파이를 색출하는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 기대했지만, 막이 내리고 나니

"누가 간첩이었나?"보다 더 큰 질문이 떠오른다.

이 영화는 간첩을 쫓는 스릴러라기보다는, 신념과

배신, 체제와 개인의 갈등을 파헤치는 드라마다.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의 마지막

대면은 승패를 넘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선택을 되묻는다. 결말을 다시 되뇌이며,

진짜 스파이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풀어본다.

1. 줄거리 요약

1980년대, 대한민국을 배경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내에 숨어든 스파이 ‘

동림’을 찾기 위한 두 팀장의 대립과 협력을

그립니다. 해외팀 차장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는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스파이 색출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정보전을 벌입니다.

그러나 수사가 깊어질수록 드러나는 것은
스파이의 정체만이 아닌, 권력의 부패, 조직 

내부의 균열, 그리고 각자의 신념과 과거입니다.

이념과 체제, 국가를 향한 충성심 사이에서
두 남자는 각기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박평호는 자신이 조직의 문제를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참아왔지만,

결국 조직의 부패를 폭로하고자 자폭을

감행한다. 이는 국가를 위해 싸웠던 그가,

체제 그 자체를 적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준다.

주요 등장인물

박평호 (이정재)
안기부 해외팀 차장. 냉철하고 치밀한 전략가.
조직을 위해 헌신해왔지만, 내부의 부조리와

진실에 흔들린다. 스파이를 추적하면서 체제에

대한 회의와 갈등을 겪는 인물.

김정도 (정우성)
안기부 국내팀 차장. 이상과 국가를 믿는

충성파. 내부 스파이 ‘동림’을 반드시 잡으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시험받게 된다.

방주경 (전혜진)
안기부 요원이자 김정도의 측근. 정보 수집과

내사에 뛰어나며,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력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유정희 (고윤정)
박평호가 보호하려는 대학생.
그녀의 존재는 박평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이야기 전개의 전환점 역할을 한다.

리 대위 (허성태)
북한군 출신으로, 남파 간첩과 연결된 인물.
스토리 후반부 갈등을 심화시키는 인물 중 

하나.

2.박평호와 김정도: 같은 목표, 다른 길

영화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벌어지는

스파이 색출 작전으로 시작된다. 박평호와

김정도는 북한 간첩 '동림'을 잡기 위해 손을

잡지만, 서로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끊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같은 조직에 속해 있지만,

마치 적처럼 서로를 견제한다.

박평호의 회의:
박평호는 안기부 해외파트 팀장으로, 조직의

부패와 비리를 목격하며 흔들린다. 영화 중반,

그가 "이 나라는 국민을 지키는 게 아니라 권력을

지키는 데만 혈안이야"라는 뉘앙스의 말을

내뱉는 장면은 그의 변화를 암시한다.

이정재의 굳은 표정은 체제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을 동시에 담아낸다.

김정도의 신념:
반면 김정도는 국내파트 팀장으로, 체제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정우성의 차가운 눈빛은 그의 확고한 충성심을

보여주지만, 그 뒤에 숨은 불안도 엿보인다.

그는 "체제가 무너지면 다 끝장이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다.

두 사람은 '국가를 위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하지만, 그 길은 점점 갈라진다. 이 대립은

개인 간 충돌이 아니라, 1980년대 군사정권

아래 억압과 저항이 뒤엉킨 시대상을 반영한다.

3. 마지막 대면: 무너진 이상과 지켜진 체제

결말에서 박평호와 김정도는 방콕의 한 건물

에서 마주한다. 박평호는 김정도에게 손을

내밀며 "이 체제는 썩었다. 같이 바꾸자"고

설득한다. 그의 눈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지만,

김정도는 단호히 거절한다. 폭발과 함께

박평호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김정도는

체제를 지킨다.

박평호의 패배:
박평호의 죽음은 비극적이지만, 그의 이상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그가 남긴 질문"이

체제가 정말 국민을 위한 거냐?"는 김정도의

마음에도 파문을 일으킨다. 이정재가 감독

으로서 연출한 이 장면은, 총격 속에서도

두 사람의 눈빛 교환이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김정도의 승리?:
김정도는 체제를 지켰지만, 승리했다고

보기엔 애매하다. 영화 마지막에 그가

허공을 바라보는 표정은 안도감이 아니라

공허함에 가깝다. 그가 지킨 체제가 과연

정의로운 것이었는지, 관객은 의구심을

품게 된다. 두 사람의 신념이 충돌하며

남긴 균열을 보여준다.

4. 결말의 여운: 진짜 적은 누구였나?

헌트는 첩보 영화의 전형적인 선악

구도를 허문다. 박평호가 스파이로

밝혀졌지만, 그가 악역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김정도가 체제를

지켰지만, 그가 영웅이라 부르기도 어렵다.

체제라는 적:
영화는 진짜 적이 '동림' 같은 외부

스파이가 아니라, 부패한 체제 그 자체임을

암시한다. 박평호는 이를 깨닫고 저항했고,

김정도는 끝까지 외면했다. 1987년 6월

항쟁 직전의 혼란을 배경으로, 이 영화는

당시 국민이 마주한 딜레마를 투영한다.

남는 질문:
박평호의 전복이 성공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김정도가 체제를 바꾸려

했다면 또 다른 길이 열렸을까? 결말은

답을 주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선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5. 결론: 끝나지 않은 싸움의 메아리

헌트를 보고 나면 쉽게 머릿속을 정리할 수

없다. 박평호는 부조리에 맞섰지만, 그

방법이 폭력과 혼란을 낳았을지도 모른다.

김정도는 체제를 지켰지만, 그 체제가 국민을

위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스파이 색출이라는 겉모습 아래, 신념과

배신, 국가와 개인 사이의 갈등을 깊이 파고든다.

결국 이 영화는 "진짜 스파이는 누구였나?

"라는 질문보다 더 큰 화두를 던진다.

"그 시대에 어떤 선택이 옳았을까?"

이정재와 정우성의 열연,

그리고 1980년대라는 배경이 얽히며 남긴

여운은, 영화를 본 후에도 오랫동안 가슴을

맴돈다. 이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 질문들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